신기루(mirage)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빛이 서로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굴절(refraction)될 때 발생하는 광학적 착시다. 우리 뇌는 빛이 직선 경로로 이동한다고 인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꺾여 들어온 빛도 직진한 것으로 해석해 잘못된 위치에 사물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뜨거운 도로 위의 물웅덩이 – 하향 신기루(Inferior Mirage)
2004년 호주 사바나 웨이, 도로 위에 물처럼 보이는 하향 신기루.
By ogwen,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여름철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은 하향 신기루(inferior mirage)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때 지면 가까이의 공기는 고온으로 인해 밀도가 낮고, 위쪽 공기는 상대적으로 차갑고 밀도가 높다. 햇빛이 이 경계면을 지날 때 아래쪽으로 굴절되며, 지면에서 반사된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가 다가가면 ‘물’이 사라지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굴절된 상(optical illusion)이기 때문이다.
떠오른 배, 공중의 해안 – 상향 신기루(Superior Mirage)
상향 신기루,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2013년
By Pipimaru,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공기 온도가 반대로 배치될 경우, 즉 찬 공기층 위에 따뜻한 공기가 놓인 상태에서는 상향 신기루(superior mirage)가 나타난다. 이때 빛은 아래로 굴절되면서 멀리 있는 대상, 예를 들어 배나 섬이 실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상에서 배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장면이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지형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이 현상 때문이다.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 바다 위의 신기루
파타 모르가나 현상으로 왜곡된 블랙 아일랜드(Black Island).
By John Meye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상향 신기루가 극단적인 형태로 복잡하게 중첩될 경우, 이를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아더 왕 전설 속 요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현상은 이탈리아의 메시나 해협(Strait of Messina)에서 특히 자주 관측된다.
차가운 바닷물 위에 따뜻한 공기가 얇은 층으로 겹쳐져 있어 여러 이미지가 위아래로 늘어지거나 뒤집힌 형태로 보인다. 해안선이나 배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하거나, 도시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이 아니라, 대기와 빛이 만든 환상
신기루는 단순한 시각적 착시(optical illusion)가 아니라, 대기 밀도(air density)와 빛의 굴절 경로라는 물리적 법칙이 만든 정교한 현상이다. 뇌는 굴절된 빛을 직선으로 해석하는 경향 때문에, 이와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우 설명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로 경험할 때는 여전히 놀라울 수밖에 없다. 마치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듯한 순간, 우리는 자연이 빚은 정교한 착시 속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