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티소, 〈만나를 거두는 모습〉(컬러판)
By James Tissot,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이슬이 걷힌 후에 보니 광야 지면 위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출애굽기 16장 14–15절>
이름의 기원
‘만나’는 히브리어 성경, 곧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음식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굶주릴 때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묘사된다.
성경에 따르면 이 물질은 땅 위에 얇게 내려앉은 흰 알갱이였고, 햇빛이 비치면 녹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히브리어로는 “만 후(man hu?)”이다. 이 물음에서 ‘만나(mān)’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만나’라는 말은 애초에 어떤 확정된 명칭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질문에서 태어난 이름이다.
성경 속의 만나
《출애굽기》에 따르면 만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얇고 흰색이며 서리처럼 땅 위에 내려앉는다.
- 고수씨와 비슷한 모양을 지녔다.
- 날것으로는 꿀을 섞은 빵 반죽과 같은 맛이 난다.
- 구우면 기름을 넣은 과자 같은 맛이 된다.
- 하루치만 거두어야 하며, 남기면 상한다.
이 규칙은 단순한 식량 공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필요한 만큼만 취하라”는 신학적 메시지와 연결된다. 축적이 아닌 신뢰와 순종의 훈련이었던 것이다.
과학적 해석
만나에 대한 설명은 종교적 해석을 넘어서 다양한 자연 과학적 가설을 낳았다.

건조 지대에 분포하는 타마리스크속(Tamarix) 식물
By Cheima fezzani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 타마리스크 수지설
시나이 사막에 자라는 타마리스크 나무(tamarisk, 학명 Tamarix)는 달콤한 수지를 분비한다. 이것은 노란 밀랍과 비슷하며 햇빛에 녹는다. 시나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채집되어 식용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특징은 성경 묘사와 부분적으로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수지는 당분이 매우 높아 빵처럼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2) 곤충 분비물설
최근 더 주목받는 설명은 깍지벌레와 같은 곤충의 분비물이다. 이 곤충은 타마리스크의 수액을 먹고 당 성분이 많은 액체를 배출한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 속에서 이 물질은 빠르게 결정화되어 작은 알갱이 형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만나는 초자연적 물질이라기보다, 특정한 자연 현상이 신앙의 언어로 해석된 사례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자연사적 설명은 물질의 기원을 밝히는 시도일 뿐, 그 서사가 공동체 안에서 지녔던 종교적 의미까지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의미

〈만나를 거두는 이스라엘 백성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DP886734).
By Pietro Santi Bartoli, CC0, wikimedia commons.
만나는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 서사에서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묘사된다. 인간이 경작하거나 노동으로 얻은 식량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존재 자체가 섭리와 은총의 상징이 된다. 광야라는 결핍의 공간에서 공동체는 자신들의 생존이 전적으로 외부의 공급에 달려 있음을 경험한다.
또한 만나는 하루치만 거둘 수 있었다. 더 많이 모으면 부패했다는 설정은 단순한 위생 규칙이 아니라, 축적과 탐욕을 통제하는 서사적 장치로 읽힌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다음 날을 위해 과도하게 쌓아두지 않는 삶의 방식이 강조된다. 이는 생존의 문제가 곧 신뢰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이다. 결핍은 공동체를 흔들지만, 동시에 그 정체성을 단단히 만든다. 만나는 먹을거리인 동시에 훈련이며, 의존과 절제를 배우는 과정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러한 상징을 확장해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을 하나의 예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의 맥락에서 보자면, 만나는 극한 환경 속에서 한 공동체가 어떻게 생존하고 스스로를 이해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기록이기 이전에, 결핍 속에서 형성된 신뢰와 정체성의 이야기이다.
마무리하며
만나는 하나의 결론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주제이다. 고대 문헌 기록, 사막 지역의 생태 환경, 그리고 후대의 신학적 해석이 겹겹이 쌓이며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헌은 신앙의 언어로 기록되었고, 현대 연구는 자연 현상과의 연관성을 탐색해왔다. 이 두 접근은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다. 하나는 의미를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가능성을 검토한다.
결국 만나 논의는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질적 질문과 함께, 고대 공동체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그 점에서 만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기록·환경·해석이 교차하는 역사적 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