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종종 “내가 무슨 화수분도 아니고, 나 정말 돈 없어”라거나 “돈이 어디서 화수분처럼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여기서 화수분(花樹盆)은 실제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재원, 곧 끝없이 무엇인가가 샘솟는 근원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
화수분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흔히 함께 언급되는 작품이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1925)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도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당시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소설의 배경은 서울의 행랑살이 부부와 두 딸이 살아가는 가난한 가정이다. 생활이 너무 어려워지자 부부는 결국 큰딸을 남의 집에 수양딸로 보내게 된다. 이후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시골로 일을 떠나지만 겨울이 되어도 소식이 끊긴다. 아내는 갓난아기를 업고 남편을 찾아 길을 나선다.
추운 겨울, 서로를 찾기 위해 떠난 두 사람은 결국 눈 덮인 고갯길에서 만나지만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 죽는다. 그러나 그들의 품에 있던 갓난아기는 지나가던 나무장수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화수분’은 끝없이 재물이 나오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주인공 남편의 별명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인심이 후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그를 두고 마치 재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며 ‘화수분’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 ‘화수분’이라는 이름은 단어 의미와는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부유함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달리 인물들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일제강점기 하층민이 겪어야 했던 빈곤과 사회적 비극을 강하게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화수분’이라는 표현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이후 이 말은 아무리 꺼내도 줄지 않는 재원이나 끝없이 나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일상 언어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한자 의미: 꽃나무 화분
화수분이라는 말은 한자로 花樹盆이라 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꽃나무가 담긴 화분을 뜻한다.
이 때문에 화수분의 의미를 설명할 때, 이러한 한자 의미에서 출발한 표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꽃나무가 심긴 화분이라는 말이 비유적으로 확장되면서 무언가가 계속 생겨나는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아무리 꺼내도 줄지 않는 재원”이라는 의미 역시 이러한 비유적 확장에서 형성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진시황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
한편 화수분의 기원을 다르게 설명하는 주장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 표현이 진시황의 만리장성 건설과 관련된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설명에서 등장하는 것은 하수분(河水盆)이라는 물동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들에게 명하여 구리로 거대한 물동이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그 동이에는 황하의 물을 길어다 채웠는데, 그 크기가 워낙 커서 아무리 물을 써도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 고사에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물동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훗날 끝없이 무엇인가가 나오는 것을 뜻하는 화수분이라는 표현과 연결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설명에는 몇 가지 의문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하수분 고사가 등장하는 명확한 고전 문헌이 분명하지 않다. 또한 하수분(河水盆)에서 화수분(花樹盆)으로 이어졌다고 보려면 ‘하(河)’가 ‘화(花)’로 바뀌는 음운 변화가 설명되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언어학적 근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
이 때문에 진시황 고사 유래설은 흥미로운 설명으로 소개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확정된 어원으로 보지는 않는다.
설화 속 ‘화수분 같은’ 존재들
‘화수분’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등장하는 특정 설화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세계의 민담과 설화에는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황금알을 계속 낳는 거위나 음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요술 식탁, 재물이 계속 쏟아지는 항아리 같은 이야기들이 그 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고갈되지 않는 부의 원천을 상징한다. 따라서 화수분이라는 말은 특정 설화 속 물건에서 직접 유래했다기보다 이처럼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샘솟는 상상을 언어로 표현한 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마무리하며
화수분이라는 단어는 짧지만 그 안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꽃나무가 담긴 화분이라는 한자 의미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진시황과 관련된 고사와 연결하려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표현이 한국어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중요한 계기는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수분은 실제 물건이 아니라 아무리 꺼내도 마르지 않는 부의 근원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어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이 단어는 지금도 우리의 언어 속에서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살아 있는 표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