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영어에서 ‘guy’만큼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도 드물다. “you guys”(너희들, 여러분들)는 남녀 구분 없이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친근한 표현이며, ‘my guy’, ‘that guy’, ‘good guys, bad guys’ 같은 조합도 미국 영어에서는 흔하게 쓰인다. 하지만 이 짧은 단어 하나에는 반전을 넘어선 기이한 역사가 숨어 있다.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guy’는 본래 한 남자 이름에서 출발했으며, 처음에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불쾌한 형상을 가리켰다.
가이 포크스와 ‘guy’의 기원
1605년 11월, 영국에서 국왕 제임스 1세와 국회를 통째로 폭파하려는 음모가 있었다. 바로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이다. 이 계획의 주동자 중 한 명이 가이 포크스(Guy Fawkes)였다. 그는 상원 건물의 지하실에 숨겨진 화약과 함께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후 고문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한 뒤 1606년 1월 31일 다른 공모자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가 붙잡힌 11월 5일은 이후 ‘가이 포크스의 날(Guy Fawkes Day)’로 기념되기 시작했다. 이 날이 되면 아이들은 낡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들고 거리로 나와 “A penny for the Guy!(가이에게 1펜스만!)”를 외치며 구걸했고, 밤에는 불꽃놀이와 함께 그 인형을 불태우곤 했다. 가이 포크스를 본떠 만든 그 허수아비의 이름이 바로 ‘guy’였다.
낡은 인형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그 인형은 대체로 너덜너덜한 헌 옷을 입고 있었고, 겉모습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guy는 ‘기괴하게 생긴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영국 작가 줄리아 샬럿 메이틀랜드(Julia Charlotte Maitland)는 『1836~39년 마드라스에서 보낸 편지(Letters from Madras)』에서 이렇게 썼다:
“신사들은 모두 ‘열대풍 옷차림’을 했어요… 그중 몇몇은 정말 흉측한 guy들이었답니다!”
여기서 ‘guy’는 단순히 이상하게 생긴 사람, 우스꽝스러운 차림의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런 뉘앙스는 아직도 영국 영어권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일상 속 ‘guy’, 그 보편화의 시작
그러나 이 단어의 의미는 곧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847년에 나온 『멋쟁이를 위한 대도시 밤 안내서』(Swell’s Night Guide through the Metropolis)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오늘 밤은 안 돼, 난 부유한 늙은 guy에게 유혹당하러 가야 하거든.”
여기서 ‘guy’는 더 이상 이상한 차림의 허수아비가 아니다. 평범한 ‘남자’, 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미국 영어에서 ‘guy’는 성별을 불문한 비격식적 표현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에는 you guys처럼 ‘너희들’을 의미하는 아주 친근한 말로 정착하게 되었다.
함께 떠오른 또 다른 단어, ‘dude’
‘guy’와 비슷한 경로를 밟은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dude'[duːd]다. 이 단어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지나치게 멋을 부리는 남자, 특히 동부 도시에서 온 세련된 남자를 뜻했다.
‘dude ranch'(도시인이 체험하러 오는 서부 농장) 같은 표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후 ‘dude’ 역시 ‘남자’ 또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일반화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hey dude!’처럼 친근한 호칭으로 자리 잡았다.
허수아비에서 일상의 언어로
오늘날 ‘guy’는 그 유래를 떠올리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로, 일상에 깊이 스며든 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국왕 암살을 기도한 음모자가 있었고, 불태워지던 인형, 기괴한 복장의 사람, 그리고 하찮은 농담 속 캐릭터로 이어지는 기이한 변천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언어는 사람처럼 시대를 따라 이동하며 변화한다. ‘guy’는 그 좋은 예다. 한 남자의 이름이 어떻게 수세기를 거치며 친구를 부르는 가장 흔한 단어가 되었는지 ‒ 그 변천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