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가 티키타카야
방금 내가 한 문장으로 엮은 두 단어 케미와 티키타가는 모두 외국어에서 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지금 한국어 속에서 거의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케미’도, ‘티키타카’도 원래는 다른 분야의 전문용어였고, 그 쓰임 역시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와의 호흡이 잘 맞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쓰일 수 있는 단어가 되어 있다.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은 외래어가 한국어 안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또 어떤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케미, chemistry에서 예능까지
‘케미’는 영어 단어 chemistry에서 온 말이다. 원래는 물질 간의 화학반응을 의미하며, 학문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영어권에서도 “we have chemistry”라고 하면 두 사람 사이에 감정적 교감이나 조화가 있다는 의미로 확장해 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케미’는 그보다 훨씬 가볍고, 훨씬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주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혹은 연예인들의 조합을 말할 때 “케미가 좋다”, “케미 터진다” 같은 식으로 쓰인다. 실제로 연인 사이의 감정뿐 아니라 서로 티키타카가 잘 되는 말의 호흡, 외모의 조합, 이미지의 조화 등 다양한 요소가 이 ‘케미’라는 말 아래 묶여 사용된다.
이처럼 과학 용어였던 chemistry가 ‘호흡이 잘 맞는다’는 문화적 감각어로 바뀐 것은 한국어의 수용방식이 단순한 차용을 넘어 창조적인 재해석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티키타카, 축구장에서 대화 속으로
‘티키타카(tiki-taka)’는 스페인 축구용어다. 짧고 빠른 패스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전술을 가리키며, 특히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유명해졌다.
이 단어는 스페인 스포츠 해설가 안드레스 몬테스가 중계 중 만든 말로, tiki와 taka는 실제 의미가 있는 단어가 아니라 단지 소리의 리듬을 흉내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단어가 대화 속으로 들어왔다. 말을 빠르게 주고받는 상황, 서로의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대화를 묘사할 때 “티키타카 잘 된다”는 말이 쓰인다. 축구에서의 패스 리듬이 사람 간의 말의 리듬으로 확장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단어가 축구 외의 영역으로 넘어왔음에도 원래의 리듬감과 박자감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티키타카’는 단지 전술용어에서 벗어나 리듬이 맞는 상황을 통틀어 설명하는 감각적 언어로 변모했다.
언어는 이렇게 다르게 살아남는다
‘케미’와 ‘티키타카’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왔지만 모두 한국어 안에서 감각적인 표현으로 정착했다. 과학 용어도, 축구 전술도, 맥락에 따라 사람 사이의 관계나 대화의 흐름을 설명하는 말이 되었다.
외래어는 단지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식 감각으로 재해석되며 새롭게 쓰인다. 그 과정에서 말은 본래 의미를 벗어나 더 일상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변화는 하나의 단어가 언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변형되며, 받아들여지는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