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nd of Brothers’라는 개념을 병사들의 이미지로 시각화한 AI 생성 이미지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라는 표현은 오늘날 전쟁 서사, 팀워크, 역사적 결속을 상징하는 말처럼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애초에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었다. 한 편의 연극 속 대사에서 태어나,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덧입으며 살아남은 표현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말
이 표현은 맨 처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에서 등장했다. 배경은 아쟁쿠르 전투(Battle of Agincourt, 1415년) 전날, 이른바 ‘성 크리스핀의 날 연설’이다. 셰익스피어는 여기서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우리 소수, 우리 행복한 소수, 우리 형제들의 무리)
이 말은 단순한 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수적 열세를 결핍이 아니라 특권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전투에 참여한 소수는 이 순간, 경험을 공유하는 ‘형제’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이제 곧 전투를 함께 치르게 될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형제가 될 것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그렇게 함께한 경험 자체로 정당화되는 공동체를 가리키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과 재등장
아쟁쿠르 전투는 백년전쟁의 여러 전투 가운데 하나로, 잉글랜드가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하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표현은 역사적 기록에 등장하는 말이 아니라, 전적으로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다.
이 표현이 실제로 현실적 맥락에서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영국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는 셰익스피어의 이 구절을 라디오 방송에서 낭독해,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영국인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현대적 의미로의 확장
이 표현은 이후 전쟁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송 과정에서 조지 W. 부시 측 변호인단은 연대와 결속을 강조하기 위해 이 표현을 인용했다.
-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는 스티븐 앰브로스(Stephen E. Ambrose)의 동명 논픽션을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공수부대를 다룬 TV 미니시리즈 〈Band of Brothers〉를 제작했다.
이처럼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더 이상 특정 전투나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이 표현은 극한의 경험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유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