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우리는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확률을 따지기보다 기억에 남은 장면과 감정으로 가능성을 판단한다. 살인사건이 늘어난 것 같고, 비행기 사고가 잦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착각의 이름은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의 발견
이 개념은 1973년,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발표한 논문 「Availability: A heuristic for judging frequency and probability」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그들은 인간이 사건의 확률이나 빈도를 판단할 때 논리적 계산보다 기억 속의 접근 용이성, 즉 가용성(availability)에 더 크게 의존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건일수록 실제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전통적 가정을 뒤집었고, 이후 ‘휴리스틱과 편향(heuristics and biases)’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카너먼은 이 연구를 기반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트버스키는 이미 세상을 떠나 함께 상을 받지 못했다.)
실험으로 드러난 착각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참가자들에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영어 단어 중에서, 첫 글자가 K인 단어가 더 많을까, 아니면 세 번째 글자가 K인 단어가 더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글자가 K인 단어가 더 많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K’로 시작하는 단어는 기억에서 쉽게 떠오르지만, 세 번째 자리에 있는 단어는 즉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 번째 글자가 K인 단어가 훨씬 더 많다. 이 실험은 인간의 판단이 기억의 접근성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뉴스와 공포 속의 확률 왜곡

이 오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일수록 범죄, 전염병, 자연재해를 실제보다 빈번하게 느낀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는 매일 새로운 확진 사례가 연속적으로 보도되면서 실제 위험보다 훨씬 높은 불안을 경험한 사람이 많았다. 이는 ‘단편적 정보의 연속 노출’이 확률 인식 자체를 왜곡시킨 사례다.
우리의 뇌는 통계 전체보다 강렬한 사례 한두 개에 더 크게 반응한다. 두려움, 충격, 분노 같은 강한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며, 이런 감정적 기억은 특정 사건의 가용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인상 깊은 사건일수록 실제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느낀다.
냉정함을 되찾는 법
가용성 휴리스틱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인식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태도가 도움이 된다.
- 우선 개별 사례보다 전체 통계를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강렬한 뉴스 한 건에 휘둘리기보다, 전체적인 수치를 살펴야 한다.
-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변동에 집중하기보다, 장기적인 추세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감정과 정보를 분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불안이나 공포 같은 감정이 곧 위험의 증거는 아니며, 냉정함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판단의 전제이다.
결론
우리의 뇌는 계산보다 기억을, 통계보다 인상을 신뢰한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이 밝혔듯, 인간의 사고는 합리적인 계산기가 아니라 직관적 생존 장치에 가깝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확률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