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아틀라스(Atlas), 지도책이 되다

베르나르 피카르 아틀라스

베르나르 피카르,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 1731』

지도책과 무관했던 단어, 아틀라스

오늘날 ‘아틀라스(atlas)’라는 단어는 보통 여러 장의 지도를 한데 모은 지도책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이 단어를 쓰지만, 사실 ‘아틀라스’는 원래 지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화에 따르면, 아틀라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티탄족(Titanes)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과 벌인 전쟁(티타노마키아)에서 패한 뒤 그 벌로 영원히 하늘을 어깨로 떠받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아틀라스는 단순히 신화 속 조연이 아니라, 신들을 거스른 대가로 온 우주의 무게를 짊어진 존재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이런 신화 속 고통스러운 형벌의 상징이 어떻게 지도책이라는 뜻으로 자리 잡게 된 걸까?

신화를 제목으로 쓴 최초의 지도책

이 단어의 의미 변화는 16세기 플랑드르의 지리학자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hardus Mercator)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을 고안한 인물로, 지구의 표면을 평면에 투영하는 데 큰 혁신을 가져왔다.

메르카토르는 1585년 『아틀라스, 또는 우주의 창조에 대한 우주론적 명상』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지도뿐 아니라 우주의 구조와 기원에 대한 철학적 고찰도 함께 담고 있었다. 이후 1594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전체 지도책은 1595년 아들 루몰트 메르카토르(Rumold Mercator)에 의해 완성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아틀라스’라는 단어가 지리학적 문맥에서 처음 사용된 사례로 평가되며, 지도책을 하나의 장르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표지의 아틀라스, 그리고 단어의 확장

이 책의 제목이 ‘아틀라스’였던 이유는 단순한 상징에서 비롯되었다. 표지에는 지구를 어깨에 이고 있는 신화 속 아틀라스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고, 메르카토르는 그 상징을 책 제목으로 삼았다.

이후 출판된 지도책들도 같은 제목과 아틀라스의 이미지를 반복해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아틀라스’라는 단어 자체를 지도책을 뜻하는 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화 속 인물을 가리키던 고유한 이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지도 모음집을 대표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언어는 이미지를 따라 움직인다

‘아틀라스’의 경우는 단어의 의미가 이미지와 출판 관행에 의해 변형된 흥미로운 예다. 본래 지도책과 무관했던 신화 속 인물이 책의 표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제목에 쓰이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아틀라스 = 지도책’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언어학에서는 의미의 전이(semantic shift) 또는 고유명사의 일반명사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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