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아라이 수족관의 명태(Gadus chalcogrammus)
By George Berninger Jr.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생태,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노가리는 모두 하나의 생선인 명태를 가리키는 이름들이다. 한국인은 명태의 크기와 상태, 잡은 시기와 가공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이는 명태가 오랫동안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보여준다.
차가운 북태평양에 사는 명태
명태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바닷물고기다. 학명은 Gadus chalcogrammus이며 영어로는 일반적으로 Alaska pollock 또는 walleye pollock이라고 한다.
명태의 자연 분포 해역은 우리나라 동해 북부에서 일본 북부, 러시아의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미국 알래스카 연안에 이르는 북태평양 북부다. 특히 베링해에는 세계적으로 큰 명태 자원이 형성되어 있다.

어획된 명태가 한데 쌓여 있는 모습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명태는 보통 몸길이 30~60cm 정도로 자라며, 큰 개체는 80cm를 넘기도 한다. 몸은 길고 가늘며 등 쪽은 갈색 또는 회갈색을 띤다. 배 쪽으로 내려갈수록 색이 밝아지고 몸 옆에는 불규칙한 얼룩무늬가 나타난다. 아래턱에는 매우 짧은 수염이 있지만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린 명태는 주로 바다의 중층에서 생활하고, 성장한 개체는 해저 가까이로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큰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며 일반적으로 수심 약 100~300m에서 많이 발견되지만 해역과 계절에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어린 개체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크릴 같은 작은 갑각류를 먹는다. 성장하면 작은 물고기와 오징어도 잡아먹는다. 반대로 명태는 대구나 연어, 넙치 같은 해양 포유류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북태평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
명태는 생선 자체를 가리키는 기본 이름이다. 살아서 바다를 헤엄치는 명태도 어종명으로는 그대로 명태라고 부른다. 생태, 동태, 황태 같은 이름은 명태가 잡힌 뒤의 상태나 가공 방법에 따라 붙는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함경도 명천에 살던 태씨 성의 어부와 관련된 이야기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에는 명천에 살던 태씨 성의 어부가 이 물고기를 잡아 관찰사에게 올렸고, 관찰사가 명천의 ‘명(明)’과 어부의 성인 ‘태(太)’를 합쳐 명태라고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명태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과정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확정된 어원이라기보다는 문헌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유래설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잡은 그대로의 생태와 얼린 동태
잡은 뒤 냉동하거나 건조하지 않고 신선한 상태로 유통되는 명태를 생태라고 한다. 여기서 ‘생(生)’은 가공하지 않은 신선한 상태를 뜻한다. 생태는 수분이 많아 살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국물이 시원하게 우러나기 때문에 생태탕이나 생태찌개 같은 국물 요리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명태는 주로 차가운 북쪽 바다에서 잡히고 쉽게 상한다. 냉장·운송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신선한 생태를 운반하기 어려웠다. 현재도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명태의 대부분이 북태평양에서 잡혀 냉동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생태는 동태보다 구하기 어렵다.
명태를 냉동한 것이 동태다. ‘동(凍)’은 언다는 뜻이므로 말 그대로 얼린 명태다. 냉동하면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먼 거리까지 운송하기도 쉽다.
동태는 해동해도 생태보다 살이 단단하고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동태찌개와 동태탕, 동태전 등에 널리 사용된다. 생태와 동태는 서로 다른 생선이 아니라 냉동 여부에 따라 나뉜 이름이다.
바싹 말린 북어

북어(AI 생성 이미지)
명태를 완전히 말린 것은 북어 또는 건태라고 한다. 북어라는 이름은 북쪽에서 내려온 물고기라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어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수분이 많은 명태는 그대로 두면 쉽게 상하지만 바짝 말리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에는 건조가 명태를 먼 지역까지 운반하고 오랫동안 저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말린 명태를 넣어 끓인 북엇국
By 행복한 초록개구리, CC BY 4.0, wikimedia commons.
북어는 물에 불리거나 두드려 살을 부드럽게 만든 뒤 국과 찜, 무침 등에 사용한다. 특히 북엇국은 담백한 맛과 함께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인식 때문에 대표적인 해장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얼고 녹으며 만들어지는 황태
황태는 겨울철 덕장에 명태를 걸어 약 3~4개월 동안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말린 것이다. 밤에는 낮은 기온에 얼고, 낮에는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녹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겨울철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말린 황태
By sansanaiys, CC BY 2.5, wikimedia commons.
이 과정에서 명태의 수분이 천천히 빠지고 살의 조직이 느슨해진다. 속살은 솜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고 색깔은 점차 누렇게 변한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황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좋은 황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날씨가 춥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밤에는 명태가 충분히 얼 정도로 추워야 하고, 낮에는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녹아 수분이 빠져야 한다. 기온·바람·습도·일교차가 황태의 품질을 좌우하는 셈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과 인제군 용대리 일대에 황태덕장이 발달한 것도 춥고 건조하면서 일교차가 큰 겨울 기후 때문이다.
황태도 말린 명태라는 점에서는 북어에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 북어와 건조 과정이 다르고 맛과 식감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별도의 식품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 황태는 넓은 의미에서는 북어의 한 종류지만, 모든 북어가 황태인 것은 아니다.
꾸들꾸들하게 말린 코다리
명태의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한 뒤 수분이 어느 정도 남도록 반쯤 말린 것이 코다리다. 완전히 건조한 북어나 황태보다 살이 촉촉하고 쫄깃하다.
코다리라는 이름은 명태의 코 부분에 줄을 꿰어 네댓 마리씩 묶어 말리던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이 역시 확정된 어원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래설이다.
코다리는 수분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양념이 잘 스며들고 익혀도 살이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무와 양념장을 넣어 조리는 코다리조림이나 매콤한 코다리찜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다.
어린 명태, 노가리

어린 명태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노가리는 본래 어린 명태를 뜻한다. 식품 이름으로는 대개 어린 명태를 바싹 말린 것을 가리킨다. 크기가 작고 살이 얇아 불에 구우면 고소하고 쫄깃하기 때문에 술안주로 널리 이용되었다.
그러나 명태가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어린 개체를 대량으로 잡으면 산란할 어미의 수가 감소한다. 과거의 과도한 노가리 어획이 명태 자원 감소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조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
겨울철 덕장에 걸어 놓았다고 해서 모든 명태가 좋은 황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조 과정의 기온과 바람, 습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그 상태에 따라 또 다른 이름이 붙는다.
건조한 뒤 전체적으로 색이 희게 나타난 것은 백태, 황태를 말리는 과정에서 기온이 높아 색이 검게 변한 것은 전통적으로 먹태라고 했다. 수분이 너무 빨리 빠져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 기온이 높아 제대로 얼지 못하고 물러진 것은 찐태, 머리를 떼고 말린 것은 무두태라고 부른다.
다만 이러한 명칭의 의미와 사용 범위는 지역이나 유통 현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먹태는 건조 과정에서 색이 검게 변한 명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마른 명태를 구워 먹기 좋게 가공한 제품이 먹태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잡은 계절과 방법에 따른 이름
명태의 이름은 가공 상태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잡았는지에 따라서도 별도의 이름이 붙었다.
봄에 잡은 명태는 춘태(春太),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秋太), 동짓달 무렵 잡은 것은 동지태(冬至太)라고 했다.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釣太),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網太)라고 불렀다.
크기에 따라서는 큰 것을 대태, 중간 크기를 중태, 작은 것을 소태라고 구분했다. 산란을 마쳐 살이 빠지고 뼈가 두드러진 명태는 꺽태라고 불렀다.
이러한 이름은 어민과 상인들이 명태의 어획 시기와 크기, 품질, 가공 상태를 세밀하게 구별해 왔음을 보여준다. 다만 일부 명칭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한다.
동해에서 사라진 국민 생선
명태는 한때 우리나라 동해를 대표하는 어종이었다. 겨울이면 강원도와 함경도 연안에 대규모 어장이 형성됐고, 잡힌 명태는 생태로 소비되거나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등으로 가공돼 전국으로 유통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연근해의 명태 어획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어린 개체를 포함한 과도한 어획과 동해 수온 상승, 산란장 및 먹이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통계청도 우리나라 해역의 수온 상승과 함께 명태·꽁치·도루묵 같은 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명태가 사라진 원인을 수온 상승이나 남획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통계청
정부는 명태 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2019년부터 국내 연근해의 명태 포획을 전면 금지하고, 인공으로 생산한 어린 명태를 동해에 방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16년 인공 부화한 명태를 어미로 성장시킨 뒤 다시 수정란을 얻고 새끼를 부화시키는 완전양식 기술을 확보했다. 명태의 생활사를 인공적으로 완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베링해와 알류샨 열도에서 명태와 태평양대구를 잡는 트롤선 ‘아틱 램’(알래스카 코디액)
By Gordon Leggett,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하지만 현재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명태의 대부분은 러시아와 미국 등 북태평양 해역에서 잡혀 냉동 또는 가공 상태로 들어온다. 명태라는 이름은 여전히 친숙하지만, 정작 우리 바다에서 잡힌 자연산 명태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이름에 담긴 음식문화
명태는 잡은 뒤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식재료로 바뀐다. 냉동하지 않은 신선한 명태는 생태, 얼린 것은 동태, 바싹 말린 것은 북어, 겨울 덕장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말린 것은 황태,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다. 어린 명태는 노가리라고 한다.
이 이름들은 단순한 식품 분류에 그치지 않는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생선을 보관하고 운반한 방법, 자연의 추위를 이용한 산촌의 건조 기술, 어획 시기와 품질을 세밀하게 구분한 어민들의 경험이 각각의 이름에 담겨 있다.
명태에 수많은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생선이 오랫동안 우리 식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명태의 여러 이름은 한 생선을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해 온 한국인의 생활방식이자, 오랜 음식문화가 남긴 언어의 기록이다.